캐나다 워홀을 마치며 - 실패한 워홀러가 존재하는 이유
2018년 12월 워홀을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모든 것들은 생각보다 순조로웠다. 남들은 1년이 지나도 받기 힘들다는 인비를 한 달만에 받았다. 인비를 받자 나머지 일들도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그렇게 캐나다행 비행기표까지 끊고 출국날만을 기다렸다. 다가 올 캐나다에서의 삶을 기다리며 많은 예비 워홀러들이 그러하듯 네이버 카페나 여러 커뮤니티를 통해 선배 워홀러들의 후기를 열심히 읽었던 기억이 난다. 아직 내가 마주하지 못한, 하지만 곧 겪게 될 새로운 삶에 대한 부푼 기대감과 호기심으로 글을 읽어 나갔다. 그들의 글에는 소위 말하는 성공한 워홀러의 삶이 적혀 있었다. 돈도 벌고, 여행도 가고, 낯선 땅에서 외국인 친구들도 사귀며 한국에서는 경험해보지 못할 일들이 설렘 가득한 문체로 적혀 있었다. 덩달아 나의 워홀에 대한 기대감도 커져만 갔다. 나도 그들처럼 멋진, 의미 있는 워홀 생활을 보내고 싶었다.
하지만 동시에 워홀에 대한 환상을 최대한 갖지 않으려고도 노력했다. 환상이 클 수록 그 환상이 깨졌을 때 실망감도 큰 법이었으니까. 결국 나는 외국인 노동자의 신분으로 일을 해야 하는 입장이었고, 평범한 노동자로서의 삶이 녹록지 않음은 수년의 아르바이트를 통해 이미 충분히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마음속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미지의 삶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기대감까지 막을 순 없었다. 그렇게 14시간의 비행 끝에 도착한 타지에서 나의 환상은 생각보다 빨리 현실과 맞닥뜨렸다.
나는 캐나다에서의 삶 보다는 기대와는 달랐던 나 자신의 모습에 대해 크게 실망했다. 적극적으로 집 밖을 탐험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것에 도전할 줄 알았던 나는 캐나다에 와서도 침대 밖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게 원래 나의 모습이었다. 원래의 내 모습을 뒤로하고 여러 후기들에서 읽은 이상적인 워홀러의 모습을 강제로 내게 대입하려고 하니 그게 말썽이었다. 마음을 내려놓고 해야만 할 것 같았던 것들에 미련을 버리니 마음이 편해졌다. 그렇게 캐나다에서의 '워홀러'로서의 삶이 아니라 한 사람으로서의 '나'의 삶을 시작할 수 있었다.
워홀을 떠나는 사람들이 목표로 하는 가장 대표적인 4가지가 있다.
돈, 영어, 여행, 경험
그리고 이는 동시에 성공한 워홀러와 실패한 워홀러를 나누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아무도 누가 성공했고, 누가 실패했는지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진 않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저 잣대를 기준으로 스스로의 워홀에 점수를 매기고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마치 내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내 목표는 거창했다. 돈은 있는대로 다 벌고, 외국인 친구들을 사귀고, 사귄 외국인 친구들과 도시 밖을 여행하고, 모은 돈으로 세계를 여행하고, 워홀에서의 삶을 사진으로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리고 친구들에게 부러움 어린 시선을 받고 싶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어리숙한 생각이었다.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게 어리숙하다는 게 아니다. '나'라는 사람은 고려도 안 한 채 남들이 동경할 만한 일들만 머릿속으로 가득 채웠었던 내가 바보 같았단 말이다.
한국에서의 나는 순전히 집돌이인데다가, 많은 사람들과 어울려 노는 걸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런 내가 캐나다에 온다고 해서 깜짝 바뀔 리가 없는 일이었다. 나의 워홀 생활은 거창하지도, 화려하지도 않았고 말 그대로 소박했다. 나의 300일간의 캐나다에서의 여정을 뒤돌아보면 후회되거나 아쉬운 순간들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나 스스로를 실패한 워홀러라고 규정하고 싶지는 않다. 실패한 워홀러가 존재하는 이유는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기준을 들이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모두가 다른 사람인데 같은 기준으로 모두를 평가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결국 각자의 기준 안에서 우리는 성공했다. 세상에 실패한 워홀러는 없다.
워홀 이야기를 조금 하자면 나는 한 번의 해고 경험과 함께 워홀을 시작했다. 170만원이라는 많지 않은 돈을 들고 왔기에 최대한 빨리 일을 구하는 게 나의 첫 목표였다. 캐나다에 온 지 일주일 만에 첫 잡을 구했다. 그리고 일을 한 지 3일 만에 잘렸다. 사장은 그저 내가 자기가 찾던 사람이 아니라는 말만 하고 내게 나가 달라고 말했다. 한국에서는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일이었기에 내게 해고당했다는 사실은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트레인 안에서 눈물이 찔끔 났다. 캐나다에 온 지 10일 만에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외생활이 이런 수모를 겪으면서까지 해야 하는 의미 있는 일일까 하는 의심이 머릿속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웃프게도 당장 돌아갈 비행기 값이 없으니 어쨌든 일을 구하긴 해야 했다. 그렇게 일주일 후 나는 새로운 잡을 구했고, 그 잡과 함께 무사히 캐나다 워홀을 마칠 수 있었다.
많은 친구를 사귀지도 못했다. 내가 친구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사람들은 같이 일하는 코워커들 뿐이었다. 물론 일할 때 말고는 밖에서 따로 만난 적도 없지만 그들이 내가 캐나다에서 지내면서 친밀감을 느꼈던 유일한 사람들임은 분명하다. 밖에서 친구를 사귀기 위해 노력을 안 했던 건 아니다. KCC도 몇 번 나가보고 밋업도 참가해 봤다. 그런데 뭔가 나와 맞지 않는 느낌이었다. 물론, 계속 꾸준히 나갔다면 분명 달랐을 수도 있겠지만 그 당시의 나는 별로 그러고 싶지 않았다.
여행은 자랑할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조금 다녔던 것 같다. 밴프, 드럼 헬라도 갔다 왔고, 토론토-몬트리올-퀘벡을 돌면서 동부 여행도 했다. 더 많은 곳을 여행했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있지만, 돈을 많이 벌고 있었던 것도 아니어서 그만큼의 여력은 안됐던 것 같다.
영어 얘기를 하자면 그래도 유의미한 성장은 있었던 것 같다. 워홀 시작때부터 유일하게 끝까지 잡고 있었던 게 영어 공부이기도 하고, 개인적인 열망도 꽤 강했기에 얻을 수 있었던 결과가 아닐까 싶다. 캐나다에서 살았던 덕분에 영어 공부가 더 즐거웠던 것 같기도 하고, 아마 영어 공부는 한국에 돌아가서도 꾸준히 할 것 같다.
곧 작년 4월부터 이어져 온 나의 워홀러로서의 삶이 끝이난다. 캐나다에서의 생활을 마무리한다는 아쉬움도 있지만 드디어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에 기쁜 마음도 크다. 캐나다에 오기 전 한국에서 캐나다에서의 삶을 기대했듯이, 이번엔 캐나다에서 한국으로 돌아가서의 나의 삶을 기대하고 있다. 출국 날짜까지 5일 정도가 남았다. 원래 워홀을 마무리하는 기념으로 미국이든 멕시코든 여행을 떠나고 싶었는데 포기하고 돈을 아끼기로 했다. 워홀을 하면서 하고 싶은 일이 생겼기에 이 돈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데 쓰려고 한다. 앞으로 한국에서의 삶이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이제 곧 워홀을 떠날 예비 워홀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여러분이 캐나다에 와서 한 달을 있던 6개월을 있던 1년을 있던, 무슨 일을 하던 상관없이 고향을 떠나 타지에 발을 내딘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한국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지 못 한 일을 해냈으니까요. 그리고 남들의 시선보다 자기 스스로에게 집중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워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